감기로 콧물 줄줄, 맹구의 몰골로도 연차를 써 본 적 없던 나도현이었다. 그랬던 그가 며칠을 쉬자하니 회사에 사정을 숨길 수가 있나. 아마도 그의 직속 상사가 출처가 되었을 소문, 노총각 결혼한다는 경사는 돌고 돌아서 양진수의 귀에도 들어가고 말았다.
방심하고 있었다. 우연히 주어진 행복을 마치 당연한 일처럼 여기는 터무니없는 실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 얽매여 그들은 정작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간과하고야 말았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 자고 있던 나도현을 깨우는 울음소리가 그는 꿈인 줄로만 알았다. 그것도 아주 끔찍한 악몽.
나도현에게는 베타인 형과 누나가 하나씩 있었다. 인구의 팔 할을 차지하는 베타는 알파오메가보다 연애와 결혼에 제약이 덜했다. 그 덕에 형은 기혼에 아들이 하나, 누나는 한 번의 이혼 후 새로운 애인이 있었다.
안정기가 지나면 결혼식을 올리자는 말에 한연호는 방긋 웃었다. 그러기 위해 양가 인사를 드리고 상견례를 해야 한다는 말에는 끔뻑 정색했고.
한연호는 나도현이 말한 ‘집’이 ‘나도현의 집’인 줄 알았다. 그래서 차가 그에게 더 익숙한 동네로 들어섰을 때 놀란 토끼눈을 했다. 룸 쉐어 아파트 입구에 딱 맞춰서 후방주차, 나도현이 시동을 끄면 우웅 시끄럽던 엔진 소리가 고요해졌다.
‘아기집이 보이네요, 축하합니다. 심장소리는... 아직 아기가 작아서 며칠 더 기다렸다 오셔야 겠어요. 한 주 뒤로 예약 잡고 가시죠.’
와 어떡하지 내 인생 망했나. 와 진짜 어떡하지 하나도 망했다는 생각이 안 들어.
한연호를 떼어내기로 결심한 후 회사 일이 바빠진 것을 나도현은 필연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바쁘다한들 전화 한 통, 얼굴 잠깐 볼 시간이 안 되었을까. 쟁쟁거리는 육성을 들으면, 하얗고 반반한 면상을 마주하면 대쪽 같던 마음도 사시나무 되어버릴까 두려워 더 피했지. 순진한 놈 속이기에 딱 좋은 구실은 그를 아주 약간 수월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한연호는 음성사서함이라는 단어가 참 싫었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만 들을 수 있는 그 생소한 말은 듣는 사람의 기분을 아주 ‘개똥’ 같이 만들었다. 그래서 나도현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뚜르르’하는 연결 음이 끊어지기 전에 통화를 종료해 버렸다. 친절하지만 매정한 그 목소리를 들어버리면 어쩐지 오상윤에게 무시당할 때가 떠오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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